(논평) 한글날에 세종대왕의 실용정신을 생각한다.


우리 역사가 낳은 위대한 임금 세종대왕이 한글날에 한국의 중심거리 세종로에 다시 납시었다. 세종로에서 세종대왕 동상이 사라진 지 40여년 만이다. 이로써 세종로는 명실상부하게 세종대왕의 백성사랑의 마음을 기리는 거리로 재탄생했다. 그동안 세종로에는 세종대왕이 부재 중이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이 그 자리를 대신 지켜왔다. 인근 충무로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찾을 수 없었다. 앞뒤가 안 맞는 어색함이 수십년 동안 엉거주춤한 자세로 웅크리고 있었다. 삼척동자가 봐도 세종로에는 세종대왕의 동상이, 충무로에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야 할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이번 한글날 기념일에 맞추고자 세종대왕 동상이 6일 세종로에 세워졌다. 세종로는 나라의 상징거리인 만큼 지난 100여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었다. 조선시대에 의정부와 육조 등 주요 관아가 있어 육조거리로 불렸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식 용어인 광화문통으로 개칭됐다. 광복 후 지금의 '세종로'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세종대왕 동상이 건립돼 명실상부함을 잠시 갖춘 듯했지만  상무정신이 투철한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세우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뜻에 따라 1968년 그 자리에서 물러나 오늘에 다시 돌아오신 것이다.


세종로에서 세종대왕 동상을 다시 보는 감회가 큰 것은 20t이라는 무게와 높이 6.2m라는 규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앞세우고 거리를 호령하는 세종대왕의 위용 때문만은 더더욱 아니다. 32년 재위기간에 보여준 실용적 애민정신과 시대를 날카롭게 꿰뚫는 통찰력과 창의성, 그리고 탁월한 국제감각 때문일 것이다. 

세종대왕은 단순히 한글을 창제하고 용비어천가를 지은 언어적 지도자가 아니다. 육진 개척과 사군 설치 등 튼튼한 국방을 바탕삼아 토지제도와 세제 개혁, 과학기술 육성 등으로 국태민안의 모범을 보였다. 나아가 뛰어난 예술가이자 문화 대왕이기도 했다. 사역원의 외국어 과목에 여진족어를 추가하고, 신하들을 중국에 보내 남방언어도 연구하게 할 정도로 실용과 개방성을 중히 여기기도 하신 성군 중 성군이셨다.


세종대왕상이 제막되는 한글날이 왔다. 나랏말이 중국말과 달라 백성들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되새기는 날이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한글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편에선 외국어에 오염된 언어현실을 개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말에 얼이 들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말은 당연히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우리말 연구와 교육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글 지상주의라는 폐쇄성에 머문다면 세종대왕의 참뜻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선진미래연대의 생각이다. 언어란 소통이 그 존재 이유라는 훈민정음의 교훈을 상기할 때 더욱 그렇다. 국제어로 널리 통용되는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도 좀더 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한글과 이들 언어가 대립과 경쟁이 아닌 공존과 보완의 관계가 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독자성을 탄탄히 유지하는 가운데 개방성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게 국경 없는 글로벌 시대에 세종대왕의 애민정신과 실용사상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길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종대왕께서 세종로에 돌아오신 이번 한글날이 세종대왕의 실용정신을 더욱 계승해 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2009.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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